리더와 뒷담화

어제 조금 당황스러운 일이 있었다.
사실 이 일로 여차하면 사직서를 제출하려고 마음에 준비를 하고 있다.
무슨 일인데 사직서까지 들먹이냐고?

동료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데 회의실에서 언뜻 내 이름이 들린 것 같아 자연스럽게 귀를 쫑긋 세워 집중해서 들어보니 회사의 한 임원이 컨콜을 통해 여러 임원들이 자리한 회의에서 내가 자기 뒷담화를 하고 다닌다며 내 직속상사도 임원이다.에게 주의를 주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실 그랬다. 해당 임원에 대해서 뒷담화입장에 따라 뒷담화일 수도, 비판이나 비난, 험담일 수도 있을 것이다.를 했다. 아니 그 임원을 포함하여 모든 임원을, 그리고 회사를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비판하고 험담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직원이 직장상사나 회사를 비판하고 험담하는 건 정상적이고 건전한 조직이라면 당연한 일 아닌가?

나는 이 회사에 입사하기 전, 여러 회사에서 팀장과 임원으로 일했으며 필리핀과 중국에서 외국인 동료들을 매니징하기도 했다.
그때 가급적 회사는 물론 나에 대한 불만이나 비판이 있거나 험담, 뒷담화를 하고 싶으면 면전에서 해달라고 이야기했다. 나도 한 인간이고 또 외국인으로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를 수도 있고, 오해나 실수를 할 수도 있으며, 문화적인 차이일 수도 있기 때문에 꼭 알려줘야 무엇이 문제였는지 이해하고 고칠 수 있으며, 또 그래야만 서로가 발전하고 좋은 조직 문화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절대 불이익은 없을 테니 면전에 대놓고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하고 또 강조하고 때론 직접 묻기도 했다.
한번은 중국인 직속 부사수가 면전에 “빨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유를 물으며 이렇게 욕을 먹는데 빨리 죽긴커녕 더 오래 살겠다고 웃으며 넘긴 적이 있었다. 오히려 동료들이 더 놀랐고 또 위로를 했지만 나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워낙에 자존감이 높아서 웬만한 비판과 욕에는 크게 상처 받지 않는 탓도 있지만 쓰디쓴 약이 나에게 좋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때론 상처도 받고 서운함도 느끼지만 그래도 경청까진 아니더라도 묵묵히 들으려고 노력한다.
특히 외국인 동료들은 워낙에 직설적이어서 멘탈에 스크래치를 많이 받았는데 오히려 그 스크래치들로 인해 굳은살이 배겼다고 해야 할까.
단지 내가 크게 화가 나거나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를 때는 실력으로 무시를 당했거나 타인에 의해 실력의 부족함이나 실수가 공공연하게 드러났을 때이다. 이럴 때면 그 흥분을 감출 수가 없다.

여하튼 어제 그 임원이 매니징하는 부서의 한 동료와 업무 이야기를 하다 프로젝트를 걱정하며 해당 임원의 뒷담화를 했는데 왜 그 이야기가 당사자에게 들어갔는지 차마 동료에게 묻진 않았지만 그 뒷담화를 전해 들었던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외부에서 컨콜을 통해 여러 임원들이 자리한 회의에서 이야기한 것이다.
그 회의가 끝나자마자 사내 메신저로 사용하고 있는 슬랙을 통해 나의 직속상사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 임원에 대해서 뒷담화를 하고 다니지 말라는 경고였다.
사실 메시지를 보고 적잖이 당황했다. 진짜 이렇게 전달이 될 줄이야.
같이 험담을 했는데 설마 그 험담을 일러바친 것인지, 도대체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 들어갔는지, 해당 임원이 조용히 부르거나 메신저를 통해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꼭 이런 방식으로 전달을 해야만 했는지 적잖이 당황하고 놀랐다.

직속상사에게는 슬랙을 통해 잘못을 시인하고 앞으로 주의하겠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속마음은 이딴 수준 낮은 이야기를 나에게 전달하느라 고생한 직속상사에게 죄송하다는 이야기였고 그 임원과 팀원은 앞으로 적당히 선을 그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설마 이렇게 하면 비판과 험담을 안 할 것이라 생각한 것인가? 인간이 대화를 시작한 이유가 험담 때문이라고 할 정도로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행위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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